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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삼국지13 고유위명 플레이

고유위명 플레이 <R1> 장료(효명진천), 황건적의 난(184.2~190.12)

by 리츠베른 2023. 3. 17.

1. 캐릭터 분석

 장료. 자는 문원. 184년 2월 1일, 황건적이 발호하여 대륙의 절반을 집어삼킨 시대에 정원 소속의 하급 무관으로 역사의 전면에 나타났다.

위명 효명진천(비장군) 군세 이동중 기동상승+사기저하량경감(中)
군령 질풍신뢰 군세속도↑↑・제압파괴↑↑・도시내구↑
중신 기마조련 소속장수의 기병적성을 1단계 상승
전법 효장질구 [7] 【아】 기동↑ / 사기↑ / 연격부여 
특기 전수 : 호걸 신속8 분전7 연전7 공성5 견수7 일기6 호걸7 위풍6 훈련7 순찰8
병과   창병A 기병S 궁병B

위명과 군령과 전법이 모두 시너지를 이루어, 군세 및 교전 중 기동력이 모두 상상을 초월하는 캐릭터다. 중신특성이 기마조련인 부분이 조금 아쉽지만 이 게임에서 기마조련이 최상급 군무중신특성임을 감안하면 군주의 중신특성으로서는 절대 나쁘지 않다. 아쉬운 시너지는 호단맹진을 가진 군무중신(조운, 장비)을 찾아내서 보충하면 될 일이고.

 

이상위명인 효명진천은 사병 1500명(양장) + 전공 1위 3회를 요한다. 이 정도면 상당히 쉬운 편으로 오히려 명성을 얻는 게 더 어려울 수준.

2. 대전략

문제가 있다면 초반에 얻을 수 있는 A급 이상의 장수들은 역사 이벤트를 통해 모두 제 주인을 찾아가고, 군주 장료는 관군 취급을 받기 때문에 미리 등용해놔도 위의 망한 세계선처럼 장수를 통으로 몰수당한다는 것.

 

이 상황이라면 대전략을 짤 때

A.역사 이벤트를 완전히 무시하는 방향

B. 역사 이벤트를 따라가는 방향

둘 중 하나를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게 좋겠다.

 

문제가 있다면 시작시점인 184년 2월이 S급 장수가 부재중인 시절이라는 것. 제갈량이나 육손 때처럼 닥치고 사마의를 향해 달리거나 순욱을 향해 달릴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나마 열화판 순욱으로 전풍이 있기는 한데, 황건평정이 일어나게 되면 원소가 낼름 뺏어가 버리기 때문에 B루트에서는 쓸 수가 없다. A루트로는 이미 한 번 천통해 본 경험이 있으니까 가능하면 B루트를 해보고 싶은데, 미녀연환까지 가지 않는 이상에야 대부분의 역사 이벤트가 장료에게 딱히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소한 문제가 있지. 동탁이 하진 세력 전부 흡수해서 슈퍼파워가 되면 그걸 장료 혼자 어쩌겠음?

 

잠깐. 내가 장료에 군주면 동탁한테 있는 무관이래봐야 여포 하난데, 이 정도는 좆밥 아님? 그럼 대충 수도대란까지만 의도적으로 일으키고, 그 시점에 원래 반동탁연맹이었던 새끼들 다 때려잡으면 되는 거 아닌가?

바로 이거야.

3. 게임 플레이

장료의 제1보는...

정원군에게 실망하고 낙향한 장료는 184년 2월 19일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이후 그의 장자방으로 불리는 재사 전풍을 만났던 것이다.

전풍이다. 장료가 저 면상을 가진 주제에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명주를 준비해서 원하는 재야장수를 직접 초대할 수는 없고, 100금을 이용해 랜덤 장수를 불러오는 연회를 통해 면식을 획득해야 한다.

지나가는 꿀팁!

연회로 랜덤한 장수를 초대할 때 누굴 초대하는지는 매월 1, 6, 11, 16, 21, 26일마다 변경된다.

이번 게임에서는 184년 2월 9일에 거록에 도착해서 10일간의 조사를 통해 2월 19일에 전풍을 찾았는데, 2월 26일까지 7일 동안 턴을 넘기고 연회를 걸어서 한번에 전풍과의 면식을 얻을 수 있었다. 세이브-로드를 몇번 하고, 시간이 20일 이상 빈다면 아르바이트 삼아 주점 퀘스트를 해서 자금을 확보하는 것도 좋다. 【인덕】 특기 미보유 캐릭터로 게임을 하는 경우 연회는 유일한 면식 확보 수단이기 때문에 알아두면 좋은 방법.

기본적으로는 논의를 통해 친밀도를 확보하면 되지만, 주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턴을 소모하지 않으므로 주점에서 담화 > 찾아가서 논의를 반복하면 된다. 주점 담화는 대부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퀴즈를 낼 때가 있고 맞추면 재애실적, 친밀도, 일정 확률로 친밀도 폭탄이 되는 감정까지 주므로 인연장수가 중요한 초반에는 절대 무시할 수 없다.

184년 4월 8일, 장료는 기주 거록의 전씨 문중에서 재사로 유명했던 전풍을 만나 친우가 되었다. 양표의 아버지 양사( 楊賜)가 태위이던 시절  태위부에서 시어사를 지내다 낙향해 고향으로 돌아와 있던 전풍은 일곱 살 어린 청년의 웅지에 매우 깊은 감명을 받고 그의 막하에 들어가는데, 그 정이 마치 형제와 같았다고 전해진다.

지나가는 꿀팁!

게임의 첫 번째 인연퀘스트를 받기 위한 감정은 친밀도가 최대치가 된 캐릭터와 담화 한 번만 하면 계속해서 주어진다. 따라서 과도한 돈이나 보물을 요구하는 난이도 높은 퀘스트를 받은 경우 수락 > 취소한 뒤에 다시 담화하면 감정이 생기고 새로운 퀘스트를 주므로, 이틀마다 인연퀘스트를 리셋하여 쉬운 게 나올 때까지 돌릴 수 있다.

184년 4월 12일, 장료는 중산에서 거병하였고, 4천의 병력이 그를 따랐다.

전풍을 얻었으니 바로 옆 도시인 중산에서 거병, 군사중신을 맡긴다. 대충 돈을 벌어 1500명의 사병을 모은 뒤에...

184년 7월 27일, 장료는 거록을 치고 장각을 포로로 잡았으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놓아주었다. 장료가 이르길, "그는 민심을 얻은 자니 조정의 이름을 빌어 참하면 민심을 잃게 되리라" 하였다.

거록을 때린다.

184년 8월 21일, 장연의 부대를 격파하고 안평에 주둔해 세를 형성했다.

이후는 재야장수를 적절히 먹어주며 하북을 반통일하고, 유언을 가두리 양식한 상태로 황건동란이 끝날 때까지 버티면 된다. 이런 플레이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역사 이벤트로 하진의 땅이 적당히 쪼개지지 않으면 수많은 S-A급 장수를 휘하에 거느린 하진과 기나긴 세월 동안 싸움을 해야 하는데 플레이가 너무 루즈해지고, 역사 이벤트를 일으키기 위해 먹으면 안 되는 땅은 아래와 같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이걸 안 건드리면서 확장을 어떻게 하나 고민하느니 재야장수부터 빠르게 챙김이 낫다.

185년 남피의 안량-문추, 업의 심배-저수, 북해의 태사자, 186년 진양의 고순, 허창의 진군 정도까지는 가능성을 보자. 위명을 변사로 바꿔놓으면 【추거】커맨드를 통해 자국 도시가 아니라도 등용을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한다.

185년 4월 6일, 장료는 기주 발해군 남피의 무인으로 유명한 문추를 불러 상장으로 삼았다.
185년 5월 22일, 문추의 천거로 발해군에서 무인으로 유명했던 안량을 불러 상장으로 삼았다. 이후 같은 해 7월 7일과 8월 23일, 일대의 재사로 유명한 기주 위군 음안현의 심배와 광평군의 저수를 불러 별가로 삼았다. 같은 해 11월 4일에는 청주 동래군의 태사자를 등용했는데, 약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무인으로 이름을 떨친 그를 호군으로 삼았다. 이리하여 하북의 재자와 맹자들이 속속들이 장료의 막하에 집결하였다.
185년 가을, 진양의 정원이 장료가 부하의 예를 올리지 않음을 괘씸하게 여기고 장료가 거병했던 중산으로 쳐들어왔으나, 거록의 기병대를 이끌고 퇴로를 차단한 장료에게 패전, 정전 협정을 맺는다. 186년 3월 15일, 장료는 예주 영천군 허현의 진식의 손자, 진기의 아들 진군과 교류하였다. 그는 장료보다 두 살 위였으나 그 의는 형제와 같았다.
186년 5월 19일, 장료는 유주자사 유언과 함께 황건적이 점령하고 있던 발해군을 공격한다. 같은 해 7월 1일에는 유주자사를 겁박하던 북평의 공손찬을 복속시켰고, 9월 14일에는 황건적 소속의 감릉을 되찾아 하북 일대의 황건적의 영향력은 사실상 소멸하게 된다. 이때, 하진이 이끄는 관군은 업에서 장각을 쳐서 참했다.
187년 4월, 관군은 예주에서 활동하던 장량을 참하여 황건적을 진압하고 논공행상을 거쳐 각지에 제후를 배치했다. 같은 날, 장료는 막하에 있던 공손찬의 군대를 빌어 기주자사 한복의 치소인 업을 공격하여 같은 해 5월 18일, 손에 넣게 된다.
187년 5월에 영제가 서거하고 6월에 십상시의 난이 일어나 대장군 하진이 암살당한다. 그리고 대망의 187년 8월 19일, 장료는 주변의 황건적과 기타 등등을 토벌하기 위한 토벌군을 조직한다.
187년 10월 12일, 장료는 진양을 점거한 흑산적의 장연을 전투에서 격파하고 병주를 점거한다. 정원의 후임 병주자사 장양은 장연의 위세에 눌려 상당으로 피해 있었으나, 장료는 세객을 보내 장양과 화친하고 곧바로 하내를 공격했다. 같은 해 11월 8일에는 하내태수 왕광을 공격해 복속시켰고, 12월 17일에는 동탁으로부터 독립한 진류 군벌 조조를 병탄했다. 이듬해인 188년 1월 26일에 연주자사 유대를 복속시켰고, 2월 14일에는 제북상 포신을 복속시켰다. 3월 22일에 평원상 유비를 복속시키니 청주자사 공융이 스스로 복속해 왔다.
188년 4월 11일 유주자사부가 있는 계를 점거하니 이로서 미리 화친한 장양을 제외한 하북 전체가 장료의 손에 들어왔다. 이 때 그의 나이 20세였다.

이제 슬슬 중신 라인업을 정리할 때다.

장료(기마조련)
전풍(공정무사) 조조(합리철저) 조운(호단맹진)
문추(창술조련)
종요(화기생재) 유비(원정보좌) : 이후 태수로 태사자(궁술조련)

공손찬, 안량, 심배, 고람, 공융을 태수로 각 전선에 배치한다. 어차피 특기가 전부 겹치니까 태수로서는 모두 B급에 해당한다. 각각 하내, 진류, 복양, 제북, 북해에 배치되어야 한다.

그리고 삼국지 중반의 꽃을 시행한다. 즉, 전쟁이다.

188년 7월 5일, 장료는 정전 협정이 만료된 것을 기화로 병주자사 장양의 치소인 상당을 빼았았다. 상당과 하내는 병주에서 사례 지방으로 향하는 관문으로, 장료군은 원정의 기세를 높여 그대로 낙양으로 향하더니...
188년 9월 1일, 낙양을 낙성시키고 헌제를 옹립했다. 헌제의 권위로 예주자사 공주를 복속시키자, 같은 달 공주는 전풍의 언변에 예주자사의 인수를 장료에게 넘겨주게 된다. 같은 해 10월 16일에는 홍농을 손에 넣었고, 이듬해인 189년 1월 15일에 동관을 넘어 장안성을 손에 넣었다. 2월 9일에는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안정을 낙성시켰고, 3월 27일에는 무위를 낙성시켜 양주의 군벌들을 복속시켰다. 5월 3일 마등이 빼앗겼던 무위를 동탁에게서 해방시켰으며, 5월 24일에는 천수를 빼앗았다.
189년 6월 21일, 마침내 동탁군의 마지막 성채인 무도성이 함락되니, 동탁의 치세도 이로써 막을 내렸다.
189년 12월 8일, 장료는 전풍을 승상으로 삼아 가절을 수여하고 수도 이외의 모든 곳을 맡기며, 유언을 토벌하라 명한다. 자신은 낙양의 4만 병력을 이끌고 형초 침략에 나선다.
190년 1월 1일, 장료는 헌제로부터 선양을 받고 조나라를 건국했다.
2월 3일에는 양양을,
3월 8일에는 강하를 각각 손에 넣는, 데? 형남 4군을 접수한 손견이 강릉으로 진출하여 조나라와 접경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조군은 4월 5일에 무릉을, 6월 11일에 계양을 접수하며 형남 4군을 완벽하게 접수하게 된다. 조군은 곧바로 교주의 사씨 정권에게로 향했고, 가맹관을 뚫는 데 성공한 전풍군은 자동을 접수하고 다음 전투를 준비한다.
190년 9월 23일, 교주의 사씨 정권이 몰락했다. 천하통일을 위해서는 익주목 유언만이 남은 상태. 22세의 장료는 말에 박차를 가한다. 그리고 3개월 후...
연호를 넘기기 직전인 190년 12월 28일, 성도가 함락되면서 게임은 막을 내린다.

사용한 주요 캐릭터는 주장으로는 장료, 조운 콤비. 부장으로는 문추, 태사자, 조조, 안량 및 장비를 사용했다.(마지막에는 수영 부여를 위해 만총이 종군하기도 했다)내정 요원으로는 초반에 얻은 전풍과 심배, 진군, 종요를 유용하게 사용했지만, 내정할 틈도 없이 게임을 끝내버렸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전풍을 제외한 문관은 대충 구색 맞추기 수준.

세계정복을 떠나며 엔딩.

인게임 시간으로 6년 11개월. 상당히 빠르게 게임을 클리어했다.

역시 짬이 쌓이면 예전이랑은 좀 다른가 보다.